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레이엄 영 (문단 편집) === 어린 시절(1차 범행기) === ||[[파일:young_001.jpg|width=100%]]|| || 어린 시절 || ||[[파일:graham young.jpg|width=100%]]|| || 체포되기 전 학창 시절 || ||[[파일:external/blogfiles13.naver.net/2b4d19ef1f5c7879b755960b545c8ff6.jpg|width=100%]] || || 1962년 체포 당시 || 태어난 지 3개월만에 어머니를 잃고 이모 손에 컸다. 그러다 2살(1950년 4월 1일)부터 [[재혼]]한 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훗날 정신과 의사들은 "정서 발달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어머니가 없었기 때문에 인간적인 온정이나 동정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인간으로 성장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1955년 그가 길가에서 차에 살짝 부딪쳐서 사고를 당했고 영국 저술가인 안소니 홀든(Anthonly Holden)의 저서 St. Albans Poisoner에 의하면 그레이엄이 3살 때 새엄마가 모형 비행기를 부숴 버리고 용돈을 조금 주고 친구를 집에 초대하지 못하게 하고 간식도 집에서 못 먹게 하는 과보호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태도는 자신의 관점 외에는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지 못 했었고 그레이엄 영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았다.[* Carol Ann Lee의 저서 Passion for poison에서 발췌했다. 원 출처는 그레이엄이 있었던 브로드무어 정신병원 당국과 그와 상담했던 심리학자의 기록이다.] [[독왕|독약에 대한 집착]]은 어릴 때부터 나타났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이 길로 빠지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은 그레이엄에게 아버지가 과학 실험도구들을 사 준 것이었다고 한다.] 학교 친구들이 운동선수나 [[가수]]를 우상으로 삼았다면 그레이엄은 '''[[영국]]의 악명높은 독살자 할리 크리픈'''을 우상으로 삼았다.[* 할리 크리픈은 1910년에 아내를 죽여 지하 석탄 창고에 매장한 뒤 자신의 [[비서]]와 도망친 살인범이다. 대서양을 통한 무선 통신으로 체포되었기 때문에 통신 역사를 다룬 책에서도 한 번쯤 언급될 만큼 유명하다.] 특히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아내]]와 [[장모]]를 독살하여 1855년 [[글래스고]]에서 교수형을 당한 살인범 에드워드 프리처드를 가장 좋아했다. 게다가 '''[[아돌프 히틀러]]'''를 존경하였고 히틀러의 절대적인 권력을 부러워했다. [[영어 위키백과]]에는 에드워드 프리처드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동시대인 윌리엄 팔머에 대한 이야기만 적혀 있다. 14살에는 [[약국]]에서 학교 과학 숙제를 핑계로 나이를 속여 [[안티모니]] 타르타르산염을 구한 뒤 늘 품에 지니고 다니며 그 약병을 자신의 작은 친구라고 불렀다. 학교 과학 실험실의 청소 당번을 자진하여 학교 과학 실험실을 드나들게 된 후에는 화학 실험에서 사용하는 독극물을 자유롭게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독학만으로 대학원 수준의 화학 지식을 습득한 것도 14세의 일이다.''' 그리고 며칠 뒤 약병에 든 독약을 학교 친구와 가족들을 상대로 실험을 시작했다. 그레이엄은 아이들이 먹는 [[샌드위치]]에 안티모니 타르타르산염을 섞고 그 양에 따라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지켜봤다. 약을 먹은 친구들은 구토하고 복통을 앓았으며 심하면 경련이 일어나기도 했다. 1962년에 15세였던 그레이엄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패륜|의붓어머니를 독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이엄이 화학 시간에 이상한 실험을 제안하는 것을 보고 학교의 화학 교사가 의구심을 가졌다. 방과 후에 그레이엄의 책상을 조사한 화학 교사는 안티모니 타르타르산염이 든 독약병과 죽어가는 사람들을 그린 그림, 유명한 죄수들과 독약에 대한 수필, 독약의 효능 및 치사량을 적은 종이를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조사를 받게 된 그레이엄은 가족과 친구들을 상대로 독약을 실험했다는 사실을 털어놨고 의붓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갇혔을 때 [[넥타이]]로 [[자살]]을 시도했는데 자살을 시도한 이유가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 '''독약 없이는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1962년 15살이었던 그레이엄은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정신이상 판정을 받아 브로드무어 [[정신병원{{에 위탁되었다. 그러나 그레이엄의 미치광이 행각은 거기서도 멈추지 않았다. 독극물에 대해 워낙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 정원에 있는 관상용 월계수와 나뭇잎에서 [[청산가리]]를 추출할 수 있을 정도'''였고 병원 직원과 동료 수감자에게 독극물을 먹여서 그 중 1명은 사망하게 만들었다. 9년 뒤에는 석방되었는데 이후의 정신과 의사 보고서를 보면 당시 완전히 치유된 것으로 나왔지만 그것은 오진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